12. 시그나기 - 가장 핫한 조지아 와인, 앰버

야옹이가 날 깨운 건 아니고

사실 이미 일어나 있었음

아 뒹굴고싶다.

숙소에서 차려준 아침. 15라리(7500원)인걸 생각하면 부실한 것 같음.
아침을 먹어서 그런지 원래 체크아웃 시간은 12시인데 주인장이 레이트체크아웃 시켜줬음.
트빌리시로 가는 버스시간인 오후 3시까지 방 써도 된다고...
조지아의 숙소 주인들은 다들 친절했는데, 어디어디가 좋고 어디를 가보면 좋은지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먼저 안내해주는 스타일은 아니었음.
영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그리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웬만하면 안 하는게 좋은 것 같음. ㅋㅋ


뭔가 한가족같이 지내는 느낌의 멍멍냥냥이들. 다들 내가 주는 고양이 간식에 애교로 반응함.

시그나기의 별명은 사랑의 도시라고 함. 24시간 결혼할 수 있는 결혼식장도 있다고 하고
그런거 치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연인들은 별로 없었음.

술 많이 먹은 다음날은 경건하게 보내기로.
트빌리시 호스텔에서 만난 이집트아저씨가 추천한 보드베 수도원을 보러 감.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의 유해가 묻힌 성스러운 곳임.
서기 300년대 사람이고 궁금하다면 위키를..
대중교통은 없는 것 같고 걸어서는 40분 정도 걸림.


도착. 현재의 건물들은 17세기에 지었다고 함.


정교회 성당들은 귀엽고 검소하고 약간 투박한 느낌을 받았는데, 보드베수도원 본당은 신경써서 지은 느낌이 컸음.
내부의 이콘들도 아름다웠는데, 사진촬영금지임

19세기에 지었다는 종탑


신경을 많이 쓴 듯한 정원의 조경이 매우 아름다웠음.


샛길로 내려가면 성녀 니노의 샘이 있음. 생전에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던 분이고, 니노의 샘 역시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함.
저 샛길 입구에 표지판이 있었음. 경사 있고 미끄러울수 있으니까 노약자 등은 이 길로 가지 말고 우회차로로 가라고 써있었음.
길 험한가.....? 궁금해하던 차에 이 길을 올라오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물어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음.
"님 니노의 샘 다녀오는거임? 길 많이 미끄러움?"
"ㄴㄴ 그냥 니 눈에 보이는 그 정도 수준임. 그냥 무지성 직진으로 한 25분 내려가면 되고, 원웨이니까 그 길로 올라와야 됨. 건물 문은 닫혀있는데 물은 마실수 있음."
이런 문답을 하다가 잠깐 담소를 나누게 됨.
호주에서 온 사람이고, 작은 와이너리를 하시는 분이었음.
오 옐로테일 이러니까 그 와인 겁나 유명하긴 한데 호주사람들은 아무도 안 먹는다고 ㅋㅋㅋ
이분이 만드는 와인의 유통망은 주로 호주 국내소비이고 소량을 일본 와인바에 수출한다고 함.
조지아에는 딱 일주일 있을거라고 ...
조지아는 8000년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와인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고
본인도 내추럴와인을 만들지만 조지아가 내추럴와인의 본산지라고 했음.
여기가 여름은 별로 덥지않고 겨울도 안춥고 (좀 의외임 - 산이 한기를 막아준다고) 산이 높으니까 강물에 미네랄이 풍부해서 포도 자라기에 좋다고...
그리고 조지아에서 가장 중요한 와인은 앰버와인.
어제 와인테이스팅하던 곳에서 못들은 와인 설명을 이분한테서 듣게 됨.
원래 오늘은 경건하게 보내려고 했지만, 저 설명을 듣고나니 다시 와인테이스팅하러 가고 싶어졌음 ㅋㅋㅋ


이후 25분정도 걸어 내려가서 니노의 샘 도착. 그냥 평범한 동네뒷산 등산로 정도 난이도임. 아무도 없었음. 관리인도 없었음.
성수는 마실 수 있게 해뒀는데.... 그냥 물맛임.
성수를 마시고 나니 배아플까 두려워짐. 아픈것도 아픈거지만 성수 마시고 탈나면 기분이 매우 더러울 것 같아서
내가 악마냐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소랑 반대방향으로 걸어서 다시 시그나기 시내로.
와인테이스팅을 한번 더 해야겠지? 리뷰 숫자는 100개 좀 안되는데도 평점이 5.0 인 곳으로 선택함
이름은 Kerovani Winery
역사가 얼마 안된 소규모 와이너리임.

술마시러 발발발발

도착하자마자 보인 것은 와인을 증류해서 챠챠를 만들 때 쓰는 증류기
손님은 또 나 하나였고, 40대 정도 되어보이는 은발머리 주인양반이 날 맞이해줬음
영어를 굉장히 잘 하는 분이었고 차분하게 조근조근 설명을 해 주셨음.
본인은 원래 평범하게 회사 다니면서 직장생활을 했다고 함.
그러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와인 제조에 뛰어든 지는 10년이 되었다고 했음.
와인을 제조하는 이 집은 150년 정도 된 집.
이곳에서 제조하는 와인들은 모두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필터도 쓰지 않는 내추럴 와인임.
4잔의 와인 테이스팅 가격은 40라리 (2만원 정도). 안주도 파는데, 안주들의 가격도 15-30라리정도는 했음.
가격 자체는 약간 높은 듯

메뉴 중에 pickeled jonjoli 라는 게 있어서 이게 뭐냐고 물었는데, 꽃으로 만든 피클이고 맛있다고 함. (위 사진)
저거 먹어볼까 싶었지만.... 얘보다는 좀 더 볼륨있는 안주랑 먹고 싶어서 Fried green bean + Yogurt 로 주문함.
그냥 쟤도 시켜볼 걸 ㅜㅜ 여행은 짧고 기억은 긴걸 잘 알지만, 왠지 여행중에는 비용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음.

우선 앰버가 아닌 화이트 와인하나를 먼저 따라줬음. 사진이 남아있지 않아서 이 와이너리 홈페이지에서 퍼옴
다른 나라의 화이트와인과 유사하게 껍질을 제거한 청포도를 가지고 숙성시킨 와인이라고 함.
일반적인 화이트와인같이 가벼운데 어제 마셔봤던 와인들처럼 조금 쌉쌀했음.

앰버 와인 마시던 중에 나온 술안주. 화이트 계열로만 쭉 마시니까 채소요리로 시켰는데...

앰버와인 삼총사의 짙은 풍미는 고기랑도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았음. 특히 삼겹살하고....
청포도를 수확해서 껍질을 벗기지 않고 케브리?라고 부르는 도자기 항아리에 넣어서 숙성시킨다고 함.
이 포도껍질이 미네랄같은 독특한 향과 바디감을 입혀줌.
각각 6개월간 그냥 숙성한거, 1개월간 숙성한 뒤 껍질은 제거한거 등등 만드는 방식이 달랐음. 뭐가 뭐인지는 까먹음.
최근에 첨가물을 넣지 않은 내추럴 스파클링 와인 제조에도 성공했다고 함.
보통의 화이트에서 느껴지지 않는 복잡한 향이나 떫음이 있지만 또 드라이한 레드가 주는 바디감과는 성격이 매우 달랐음.
어제 마셨던 애들보다 훨씬 두꺼운 느낌.
필터도 안 쓴다는데, 약간 잔 가지같은게 들어간 병도 있었음.

이게 케브리라고 하는 도자기임.
그리스나 로마 유물로 나오는 암포라라고 하는 거는 단순 저장 보관용이고
와인 숙성은 이 도자기로 해야 한다고 함.

온도 유지를 위해 저 케브리를 이렇게 땅에 묻어 숙성숙성.
8000년 전과 동일한 방법이라고
여기 있는 애들은 3천리터짜리라고 함.
플래시를 켜서 빈 통의 깊이를 보여주는데, 깊이가 어마무시했음.
그리고 모래로 덮힌 애들은 진짜로 숙성중인 와인이 담겨있었음.

그리고 여기가 병입하는 장소. 와인에 쓰이는 청포도를 맛보라고 줘서 먹어봄.
까베네소비뇽같은건 생으로는 못먹을 맛이라고 들었는데, 이 와인에 쓰는 청포도들은 꽤 진한 단맛이 났음.
보통 와인은 보관과 유통을 위해 이산화황을 소량 첨가하지만, 여기서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고 함.

빼곡하게 저장된 와인들.
와이너리 규모가 작아 대부분은 내수용으로 판매하고, 소량만 해외 와인바에 수출한다고 함.
조지아인들은 뒤뜰에서 홈메이드 와인을 만들기도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스테인레스 스틸이나 오크통을 쓴다고 함.
땅에 케브리를 묻어서 만드는 방식은 매우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롭기 때문.
조지아와인들 중 스위트와인도 많은 것 같아서 물어봤는데, 이런 것들은 내추럴 와인으로는 만들 수 없다고 함.
(당첨가하는 거. 참고로 서울 광희동에서 파는 조지아와인중 싼건 대부분 스위트와인임)
레드와인도 많이 생산하지만 사실 이건 다른 나라 와인들을 따라 해서 만드는거라고, 조지아 와인의 근본은 화이트라고 함.
청포도 껍질을 첨가하여 향미를 입히는 조지아의 와인제조 방식은
새로운 타입의 화이트와인을 제조하고 싶어하는 다른 나라의 와이너리들한테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시그나기로 와서 와인 제조방식을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함.
우리나라의 술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우리나라는 주로 쌀과 같은 곡류로 술을 만들고, 한병에 1달러 정도 하는 아주 저렴한 증류주인 소주가 존재하고
와인을 만드는 포도가 자라기에 적합한 기후가 아니라서 국산 와인은 있지만 퀼러티가 좋지는 않다 이렇게 대답함.

뒷뜰에는 야옹이들이 있었음. 둘중 하나의 이름은 그레이프였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까먹음.



다시 마슈르카 타고 지하철을 타고 저번에 묵었던 호스텔로
호스텔에는 술판이 벌어져 있었고,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 처음 해보는 우노 게임하면서 놀았음.
시발 어떻게 한번을 이기지 못하지
그러다 10시가 된 후 카리스마 있으신 호스텔 여사장님의 명령으로 해산.
다음날은 조지아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임.